#늑대와 종달새
2008년 7월 25일에 만들어졌으니, 어느새 10년이나 된 그림책입니다. 2001년생이니 지금은 아가씨가 다 되었지만, 이 그림책을 만들던 당시에는 만으로 6살이었고 7살이 되어서 완성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저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책을 넘기다 보면 우선, 그림 실력이 만만치 않음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유치원생의 그림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유치원생의 흔적이 역력한 묘한 그림입니다.
10년 전의 당시를 떠올려 보면, 타고난 소질 좀 있다고 으쓱대던 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린 작가님의 영재급 실력에 감탄하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범상치 않은 구도까지도 스스로 구상하며 그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제안이나 힌트를 용케 알아듣고 활용하는 모습이 신통방통하게 보였던 것이지요.
#일곱 살 꼬마의 이야기
하지만 이 그림책의 감상 포인트는 이야기에 있습니다. 줄거리는 그냥저냥 발랄하고 단순합니다. 종달새가 방귀를 뀌고, 잡아떼는 바람에 늑대가 영문도 모르고 곤경에 처해지고, 그래서 또한 영문도 모르는 다른 동물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사건입니다.
하루하루 전개되는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저는 거짓말을 한 종달새가 받을 응분의 대가나 격한 반성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은 나쁜 것, 또는 곤란한 사태의 원인을 철저히 파헤치는 정의로운 교훈이 담기리라 짐작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야기의 마무리는 그런 짐작을 보기 좋게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길을 잃고 처량하게 노숙까지 했던 동물들이지만 집 밖의 세상 경험에 눈을 뜨고 본격적인 여행을 계획한다는 겁니다.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종달새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원망하는 대목도 없습니다. 사과라도 받았다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냥 앞날에 대한 기대만 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결말
틈만 나면 지금의 처지에 불평하며 원인으로 짐작되는 과거의 계기나 사람을 원망하던, 저와 제 주변의 어른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결말입니다. 사태를 바로잡지 않은 것입니다.
조그만 손해에도 악착같이 배상을 받으려는, 책임을 추궁하고 떠넘기려는, 심지어 손해가 없어도 상대의 약점이나 실수를 기회 삼아 용서치 않는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서툴기 그지없는 처신입니다.
# 가만히 살펴보면……
하지만 지내온 저의 행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떤 예상 못한 계기가, 의도와 다른 결과들이 겹치고 겹쳐서, 아무튼 지금의 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불가항력이어서 일일이 바로잡지도 못했겠지만 그럴 여력도 없었던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에 와서 그 원인들을 곱씹으며 원망해 봐야 부질없을 것입니다. 악착같이 바로잡았다 해도 지금보다 나아졌을 것이라는 확신도 딱히 없습니다. 어떤 계기는 직업을 바꾸게도 했지만 직업의 가치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가끔은 이런저런 원인을 원망하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요즘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마디 합니다. 그보다는 시름일랑 잠시 접어두고, 지금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뭔가를 궁리하라고 말입니다. 손해를 봤다면 교훈 삼아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수업료를 지출합니다. 수업료가 조금 더 들었노라 생각하고 그만큼 많이 깨달았으면 되는 것이지요. 시련에서 계기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한 처신입니다.
원망과 후회와 복수와 응징, 또는 어려운 배상을 받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앞을 계획하는 일입니다.
#피해 망상을 배웁니다.
오십 살이 넘어서 할 수 있는, 이런 말을 일곱 살 꼬마가 하고 있습니다.
‘뭐지?’ 곰곰이 따져 봤습니다. 짐작일 뿐이지만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원래 사람들은 이런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교육을 받습니다. 지면 안 된다는, 손해 보면 안 된다는 피해 망상을 배웁니다. 항상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법을 배웁니다. 타인은 항상 정당한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배웁니다. 그래서 자신보다는 남을 탓하는, 분풀이하는 계획을 세우는 습관이 붙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됩니다. 결국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진작에 깨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에 대한 많은 생각
동물 친구들은 종달새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착각하여 뛰쳐나간 자신을 반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밖에서의 경험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불행한 사건이 아닙니다. 따지고 사과받을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잘 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일곱 살 꼬마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바퀴 달린 그림책 대표 / 이종구 maybook@hanmail.net